출처 : 다음카페 "5불생활자" 하늘호수7 님의 "370일 만의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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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콕에 있습니다. 이제 몇 시간만 있으면 지난 1년 간의 여행을 마치고 370일 만에 한국 땅을 밟게 되겠네요. 참 꿈만 같던 시간이었습니다. 대학, 군대, 대학원, 회사를 거치면서 평범한 길만 걸어오던 제가 1년 간을 여행하다니.. 인생이란 이런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때 더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해 보는 장기여행이라 필요 없는 짐을 잔뜩 짊어지고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도착해 직장에서 여름휴가 나왔을 때처럼 어리버리 하게 행동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새로운 곳에 도착해 대충 휙 둘러만 봐도 분위기 파악이 다 될 정도로 노련한 여행자가 되었다니 것이 시간이 그만큼 지난 것이 느껴지네요. 그리고 어깨 밑으로 한참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과 길거리에서 태국 사람들이 태국어로 말을 걸만큼 까매진 피부 같은 변해버린 외모 만큼이나 제 자신도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넓은 세상과 다양한 사람들의 삶들을 보고 나니 삶과 행복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저보다 훨씬 못 가지고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 웃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제가 얼마나 옹졸하고 속 좁게 살아왔나를 뼈 저리게 느끼게 되더군요. 택시 안에서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릴 때가 되니 얼마 안 되던 택시비를 깎아주시면서 조심해서 여행 잘 하라고 하던 멕시코 택시기사 아저씨. 비좁은 만원 콜렉티보에서 몇 시간씩 허리를 굽히고 서서 가면서도 나에게 페루 옥수수 맛을 보라며 삶은 옥수수를 건내 주던 페루 아저씨. 그들도 그처럼 행복한 웃음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그들보다 훨씬 부유하고 잘 배우고 건강한 제가 앞으로 그런 웃음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두 다리로 걸어보고 두 눈으로 본 이 세상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바꿀 정도로 넓고 아름다웠습니다. 눈부시게 파랗던 카리브 해, 볼 때마다 가슴을 뛰게 하던 파타고니아의 대자연, 하얗게 빛나던 우유니, 저를 압도하던 안데스 산맥의 장엄함,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던 홍해의 바다 속.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고 좁은 땅 덩어리에 갇혀서 살다가 죽었다면 한 번 사는 이 삶이 얼마나 허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누군가의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이젠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떠나갈 때 진심으로 ‘이 세상, 정말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여행을 하면서 늘 혼자라는 외로움과 떠돌이 생활의 고달픔에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지난 1년 간의 시간은 서른 여섯 해 동안의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많은 것을 배우고 의미가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30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여행을 시작하는 것에 주변 사람은 물론 저 또한 불안했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경험한 나이에 여행을 시작했기에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조그만 것도 참지 못하고 늘 조급했던 20대에 이런 여행을 했다면 어디서 흥청망청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었거나 계획했던 1년을 버티지 못하고 금방 여행을 끝냈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저에게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현실 속에 매몰되지 않고 가슴 속에 있는 꿈을 실현할 뜨거운 가슴과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 것이 기쁘네요.
이제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머리 속에는 현실의 문제보다 다음 여행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네요.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나 생각나는 중남미를 다시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전 ‘영혼을 파묻었다’라는 말이 그냥 작가들이 쓰는 입 발린 표현인줄 알았는데 그 말이 정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더군요. 정말 제 영혼의 절반 쯤은 저 안데스 산맥 어디, 카리브 해 어디에 파 묻혀 있는 것 같습니다. 파타고니아의 하늘과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떠돌고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지금 가능하다면 다시 취직을 하기 전에 짧게라도 남미를 다시 다녀오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몇 일간 인터넷을 붙들고 씨름했더니 비행기 표는 싸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ㅋㅋ
그 동안 뻔질나게 5불당을 드나들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5불당이 없었다면 장기 여행이 처음인 제가 이렇게 건강하게 무사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을 것 같지 않네요.얼굴을 뵌 적은 없지만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신 많은 회원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이제 서울에서 소주 한 잔 할 일만 남은 건가요? ㅎㅎ
그럼 모두 가슴 속에서 꿈꾸는 여행을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꿈은 간절히 바라는 자에게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항상 꿈꾸시고 가슴 속에서 열정을 잊지 않으시면 5년 후건, 10년 후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