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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09의 게시물 표시

인도인들은 영어를 잘한다?

인도에 오기 전 들었던 이야기로 인도는 영어를 잘한다 . 네팔에서는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품격있게 생각한다고 했다 . 네팔은 힌디어를 사용했고 , 영어 통용도는 그럭저럭 높은 편이었다 . 인도는 영어 통용도는 상당히 높다 . 그러나 분명 인도 특유의 발음과 억양이 존재한다 . 또한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는데 , 특히 영국 통신사 Vodafone Store 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발음과 억양은 화가난다 . 중국에서 같은 방에 있었던 영국인의 발음과 호주에서 만났 던 영국 여자애들과 대화했던 기억 , 그리고 여행중 만났던 몇몇 영국인들과의 대화를 떠올리면 Vodafone Store 직원들의 인도식 영어는 분명 그들만의 영어라고 확신하고 싶다 . 지금 나의 영어실력을 주관적인 입장으로 얘기하면 , 약간의 대화를 해 보면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영어 ( 약간 강한 발음 ) 인지 , 영국의 영어 ( 강한 발음과 t 발음이 많이 들림 ) 인지 , 프랑스나 그 기타의 유럽피언 ( 차분하고 익숙하고 편안한 발음 ) 들인지 , 미국의 영어 ( 한국에서 흔히 듣고 배우는 굴리는 발음 ) 인지 남미의 자신감 넘치는 영어인지 50%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 그리고 나에게 가장 익숙한 발음은 아직까지는 미국의 영어와 호주의 영어이다 . 호주는 과거 영국의 속국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내 느낌은 오히려 영국사람들 보다 비교적 편안하게 들린다 .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 종종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본적인 문법조차 잊을만큼 당황스러운 대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 마날리에서 맥그로드간지로 같이 온 프랑스 친구와 같은 방을

Oasis.

오아시스 . 맥그로드간지의 한국식당 ' 도깨비 ' 옆에 있는 작은 카페의 이름이다 . 좋은 사람들 티벳인들과 어느정도의 인도인들과 여느 관광도시만큼의 외국인들이 어울려 무언가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곳 맥그로드간지에서 스웨덴에서 온 여자애들 둘이서 운영하는 분위기 좋은 카페 . 무선인터넷이 되는 ' 도깨비 ' 에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넷북을 챙겨들고 나왔다가 마침 오늘이 쉬는 날이라고 하여 그저께 봐 두었던 이 곳 카페로 들어왔다 . 간단히 콘프레이크와 Scrabled egg, 블랙커피를 주문해 놓고 소파에 몸을 맡긴 채 아침 내음을 느낀다 . 어쿠스틱풍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의 음악에 어울리는 적절한 공간과 하얀 커튼 너머로 비추는 햇살 , 열어둔 창문으로 스미는 신선한 공기와 멀지않은 곳의 히말라야 풍경이 모두 어우러져 한 덩어리의 상쾌함이 되었다 . 언젠가 그 어떤 아름다운 곳에 꾸밀 나의 작은 카페 꿈을 꿔본다 .

달라이라마?

많은 사람들이 ' 달라이 라마 ' 라는 말은 들어봤을 것이다 . 오늘은 달라이 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 티벳은 원래 독립된 국가였으나 1949 년 5 월 새로 출범한 중국 공산당은 억압받고 있는 티벳민중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티벳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 전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 1940 년대 일본의 남경 ( 난징 ) 대학살과 침략에 대해서는 중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 중국의 티벳 침략역시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120 만의 티벳 국민이 죽었고 독립항쟁은 탄압되었다 .) 또한 중국의 티벳침략의 명목은 같은 몽골제국아래 있었다는 것이지만 , 그것이 티벳인에게 해방이 아닌 침략임은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다 . 다만 중국에게 간섭할만한 나라가 전 세계에 별로 없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 그들의 침략에 14 대 달라이라마 ( 뗀진갓쏘 ) 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1959 년 이들을 이끌고 망명하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 달라이 라마는 소수의 측근들과 함께 히말레 산맥을 몇 주 동안이나 걸어서 인도에 도착했다 . 그 후 약 25 만 티벳인들이 그들을 따랏고 티벳 망명 정부는 맥클로드 건즈에 망명 정부 설립을 인도로 부터 허가받았고 , 그 후 이곳은 40 년도 더 되는 세월동안 자유투쟁의 본거지가 되었다 . 또한 뗀진 갓쏘는 티벳 해방을 평화적으로 이루려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9 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 그가 살고있는 곳이 바로 북인도 맥그로드간즈 . 현재 내가 있는 곳이다 . 달라이라마는 일년 중 많은 시간을 타국 순방으로 보내기도 하는

인도 마날리에서 떠나는 여행, 로탕패스.

히말라야 산맥은 험준하고 높아 많은 사람들이 살기에는 좋지 못한 환경이다 . 그러한 이유로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여행자들에게 사랑 받곤 하는데 , 나는 중국에서 히말라야로의 여행을 버렸었다 . 히말라야와 관련하여 대자연을 볼 수 있는 유명한 여행은 몇가지가 있는데 , 1. 중국 청두에서 티벳으로 들어가는 길 . 2. 중국 윈난에서 들어가는 차마고도 . 3. 티벳에서 네팔로 넘어오는 길 . 4. 인도 마날리에서 레 (Leh) 로 넘어가는 길 . 5. 파키스탄 ...( 정보없음 ) 등등 내가 모르는 좋은 곳도 많을 것이다 . 어쨌든 내가 있는 곳은 인도 마날리이고 , 레 (Leh) 를 향해 육로로 넘어가는 길 ( 해발 5400m 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고속도로이다 .) 은 연중 6 월 ~9 월중순까지로 지금은 이미 닫혔다 . 대신 레 (Leh) 로 가는 길의 1/5 정도 들어가는 로탕패스로 가는 투어는 있다 . 로탕패스의 풍경(클릭하면 크게..)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약 10 여년전에 류시화씨가 인도여행과 관련하여 집필하였던 수필집이고 , 아마도 2002 년경 읽었던 기억이 나지만 룸비니에서 다시 접하게 된 책 . 나는 이 책을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 어느정도 내가 정신적으로 추구하는 이야기를 잘 표현해 줬기에 인용하고자 한다 . Scene #1 뭄바이에서의 일이었다 . 류시화 ( 이하 시인 ) 는 인도음악을 수집하고 감상한지 10 년이 된 매니아였고 , 그 곳의 한 식당에서 쑤닐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 인도음악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중 그로부터 라비샹카 ( 인도 최고의 음악가 ) 의 공연이 당일 저녁에 뭄바이에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그들은 그 날 밤 11 시경의 공연을 같이 보러 가기 위해 저녁 8 시경 다시 그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 라비샹카의 공연에 대한 시인의 기대는 컸기에 7 시 반부터 그를 기다렸고 , 밤 9 시가 되어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 시인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고 , 주변의 릭샤 ( 자전거택시 ) 를 붙잡고 그 도시의 큰 공연장을 찾아 헤매었다 . 결국 찾아낸 공연장은 어떤 운동장이었고 , 객석 중 앞의 좋은자리에 쑤닐이 떡하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 시인은 화가나 쑤닐의 뒷통수를 후려치며 ,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유를 따져 물었다 . 그러자 쑤닐은 " 아아 , 그래요 ,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지요 ." 그 말에 더욱 화가난 시인은 무서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자리를 뜨려는 순간 쑤닐은 이어 말했다 . "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 내 잘못이에요 . 하지만 당신은 내 잘못을 갖고 자신까지도 잘못된 감정에 휘

여행.

(사진 : 델리의 구뜹미나르-무굴제국의 성?-Photo by 명철) 고등학교 3 학년때 여러 음악에 심취해 있었으나 , 오늘은 그 중 조 pd 가 떠오른다 . 조 pd 의 노래 중 이런 가사가 있었다 . " 우리나라에만도 4 천만 세계가 있지 ." 그렇다 . 어렴풋했던 내 마음속의 그것을 그가 확신시켜 주었다 . 사람 하나하나는 모두 다른 세계였던 것 .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여행은 여행을 하는 자의 주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 그 주체가 슬프다면 슬픈여행을 , 그 주체가 행복하다면 행복한 여행을 만들 수 있겠지 . 즉 , 어디를 여행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여행하는 가에 따라 각 지역에서 느끼는 느낌이 다르다 .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 곳에서 찾는 정신적인 여유는 한국의 우리동네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 물론 그것은 내 가족과 연인이 나를 믿고 지켜봐 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어쨌든 여행의 어떤 지역에 대해 느끼는 그것은 확실히 사람마다 천지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나는 카트만두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 대해 좋게 이야기한 바가 있다 ( 물론 카트만두가 나쁜 것은 절대아니다 , 다만 인도 , 네팔을 통틀어 처음 접한 도시였기 때문일 뿐이다 ). 글쎄 , 달리 특별히 좋은 곳이 있었던지는 모르겠으나 , 솔직히 내가 좋았던 이유는 .. 내 한 몸 누일 잠자리가 있고 , 불편하지 않게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 불편하지 않을만한 날씨와 공기 , 불편하지 않을만한 샤워시설 ,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풍경이 있는 그것이었다 . 지금 떠오르는 네팔의 포카라 , 룸비니 , 인도의 바라나시 , 델리 , 현재 머물고